문학공간 소리-채집

박철 시인의 문학 작품에 나온 공간의 모습과 소리를 채집했습니다. 작품의 동기(모티브)가 된 공간이 변화된 모습과, 작품 속 공간이 현재 품고 있는 소리를 만나보세요. ​


시인이 작품을 쓰며 보고 들었던 풍경과 소리, 작품 낭독을 주의 깊게 들으며 시인의 심상을 떠올려보고, 여러분만의 새로운 문장도 만들어보세요. ​


공간이 사라지더라도, 시간이 흐르더라도, 시인의 문학 작품은 영원히 독자와의 만남을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이 쓴 문장도 함께 남을 것입니다. ​


우리는 이번 '문학공간 소리-채집'을 통해 문학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소리와 문학의 만남, 시인과 당신의 만남. 시작합니다.

낭독 박철 

자문 박철 김동기 ​

기획 김경현 

디자인 이사각_박현주, 소재은 

촬영 이예울


​* 작품 사용을 허락해주신 시인 박철 선생님과 출판사 문학동네, 창비에 거듭 감사드립니다. 

* 박철 시인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2022 소재은 作 '개화산' 일러스트를 활용하여 홍보물과 인쇄물을 제작하였습니다. ​


주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다시서점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녹음 현장 사진

상사동相思洞 (개화동 상사마을) ​

 소설 『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에서 묘사하듯이 서울이지만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상사동은 1963년 서울로 편입되었습니다. 1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고즈넉한 마을로 법정동으로는 개화동, 행정동으로는 방화2동에 속합니다. 상사동은 상시꼴, 상사꿀, 갯모랭이 등의 이름으로 불렸는데 행주대교 남단 나들목으로부터 개화로의 북쪽 지역에 걸쳐 발달했습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사람이 개화산 귀퉁이에 뽕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해서 상사꿀이라 했는데 삼산곡(參山谷)이 변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한편 갯가 모퉁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는데 굴포(屈漁)천의 배수로 허리쯤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강 하류는 인천만의 바닷물이 섞이므로 소금기가 있어서 강변이지만 갯가라고 했습니다.

공항시장 

​ ​ 공항시장은 처음에는 ‘비행장터’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1939년 활주로 건설을 시작한 일제는 1942년 김포 비행장 건설 공사를 준공했고, 일본군 가미카제 특공대 훈련장으로 사용했는데 강서구지에서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비행장 정문 북쪽에 있으며 매일장터로서 축산물만 닷새장이 선다. 시장설립의 유래를 살펴보면 비행장이 설치되게 되어 (중략) 사람이 모여 장이 되었다. 6.25전란도 한몫하여 피난민, 월남 피난민이 갑작스레 늘어나 그 점포가 큰 길가 양측에 줄을 서고 번창하여 (중략) 당국에서는 시장을 허가하게 되고 각종 점포도 큰 도시와 겨룰만하게 되었다.” 1952년 가축시장허가 이후 1955년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한 공항시장은 소설 『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에서 묘사하듯이 인도에 사람이 넘쳐흐르던, 인도의 반 이상을 노점상이 차지할 정도로 붐비던 시장이었습니다.

조국에 드리는 탑

1971년 재미사업가 김시면씨에 의해 김포공항 중앙에 헌납되었던 ‘조국에 드리는 탑’은 국외교포의 조국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마음을 탑에 담아 조국의 영원함을 간직하기 위해 기증되었습니다. 2001년 김포공항 통합역사 공사로 철거되었다가 2007년 현 위치로 옮겼습니다. 자연스럽게 산화되는 Corten Steel이라는 무도장 특수 강판으로 제작된 ‘조국에 드리는 탑’은 박철 시인의 소설 『 평행선은 록스에서 만난다』에도 그 당시 주변 모습과 함께 남았습니다. ​ 

개화산

개화산(開火山), 개화산(開化山), 봉화뚝이라고도 불리는 개화산(開花山)은 신라 때에 주룡(主龍) 선생이라는 한 도인이 살아 주룡산이라 불렸습니다. 선생이 돌아간 후 그 자리에 이상한 꽃 한 송이가 피어나 이를 두고 사람들이 개화산이라고 일컬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산의 형상이 꽃피는 형국이라 하여 개화산이라고도 하는데, 박철 시인의 시 ‘개화산에서’에서 말하듯이 낮고 조용한 산이어서 개화동, 방화동 주민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는 산이기도 합니다. 전남 순천에서 오는 봉화를 받아 남산 제5봉수에 전했기 때문에 봉화뚝이라고도 불렸으며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사용했다는 봉화대의 터가 남아있습니다. 

미타사


고려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미타사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 사찰이 중창되었고, 1937년 석불 보호각이 지어졌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모두 소실되었다가 1970년 이후 지일스님과 송강스님(개화사 창건주지)에 의하여 중창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미타사 석불입상은 원래 현재 위치보다 높은 산 위쪽 흙 속에 묻혀 있었으나 미타사로 옮겨졌습니다. 이 석불입상은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경기, 충청 등, 중부지방에서 유행하던 석불 유형을 따르고 있으며 조성 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됩니다. 박철 시인의 시 ‘까치집’에서 미타사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약사사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개화산 내 사찰인 약사사(藥師寺)는 약수암(藥水庵), 약수사(藥水寺), 약사사(藥師寺) 등으로 절의 이름이 바뀌어 불렸습니다.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謙齋鄭歚, 1676~1759)이 개화사(開花寺)라는 제목으로 사찰과 주변 풍경을 그리기도 한 약사사에는 고려 중기 탑파 건축의 변천 과정을 알 수 있는 3층 석탑과 석불이 있는데, 3층 석탑 꼭대기에 있는 돌은 언젠가부터 그 자리에 있지만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닙니다. 박철 시인의 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약사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오래 사랑받는 사찰입니다. 

영진설비 


박철 시인의 작품에서는 강서구 서쪽. 특히 개화동, 방화동, 공항동, 마곡동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최근 복간된 박철 시인의 시집이자 표제시 『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문학동네)』는 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비를 갖다 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럭키슈퍼를 지나 영진설비까지 가던 시인을 그린 시입니다. 방화6구역 재건축으로 예전 영진설비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지만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길을 걸으면서 시를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방화동 쌈지공원

쌈지공원은 시민에게 다양한 여가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자투리땅에 조성하는 공원입니다. 동네 주민들의 쉼터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방화동 쌈지어린이공원은 농구대가 설치되어 있어 농구 하고 싶은 학생들이 많이 찾기도 합니다. 박철 시인의 시 ‘놀이터, 풍경’은 오후 네 시, 방화동 쌈지공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농구대를 향해 자맥질하는 중학생의 모습과 시소를 타는 시인. 놀이터를 소재로 그 시절 시대상을 그린 시인의 시를 쌈지공원 벤치에 앉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본 저작물은 '강서구청'에서 '2022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방화동 쌈지공원 준공식(작성자:홍보정책과)'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강서구청, 강서아카이브(https://www.gangseo.seoul.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아라뱃길, 개화산, 김포공항


박철 시인의 시 ‘김포는 항구다’는 강서구 서쪽 주민들이 보고 들어왔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비행장 인근 소음을 묻는 사람들에게 답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새롭게 들어선 아파트와 개화산 철쭉, 가을 들길에 길을 내는 운하와 신도시의 흥분을 만나게 됩니다. 개화산 자락 전망대에서 시 ‘김포는 항구다’를 읽다 보면 저 멀리 아라뱃길이 보이고 김포공항 활주로가 보입니다. 그 옛날 김포였던 그곳은 항구였고 지금도 배며 비행기, 사람이 들락거리는 이곳은 여전히 항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보물웅덩이

범머리웅덩이라고 불리는 이 작은 못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물이 불어나면서 생겼다(강서 뉴스, 2023-01-03 기사, 홍재숙 작가)’는 말도 있고, 그전부터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박철 시인의 시 ‘약속’에서는 ‘퇴각하는 몽골군이 보물을 잔뜩 버리고 갔다’라고 전합니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귀중품을 이곳에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보물웅덩이’라는 말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전해졌습니다. 1970년경 주민들의 청원으로 김포공항 내에 있던 미 공군 Ⅱ전투 비행대의 도움을 받아 대형 모터 펌프 수십 개를 지원받아 웅덩이 물을 퍼내었지만, 1개월가량 물을 퍼내도 물이 줄지 않아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현재는 웅덩이 주변으로 주변에는 배드민턴장과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을 비롯해 건축물 폐기장과 사유지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지금은 웅덩이와 주변이 조금 위험하다 보니 자세한 주소를 알려드리기는 어렵지만, 언젠가 주변이 정비되고 나면 웅덩이를 바라보면서 박철 시인의 시 ‘약속’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날이 저에게는 ‘보물’처럼 느껴집니다. 

김포 들판

경기도 김포시의 굴포천(掘浦川) 유역과 한강 하류 남안에 발달한 퇴적평야인 김포평야는 박철 시인의 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곳입니다. 개화산 서쪽으로 신선바위에 오르면 계양산 앞까지 펼쳐진 너른 들판을 볼 수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공항에, 서울에, 부천에 편입되면서 갈수록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는 들판을 바라보다 보면 시인이 장대비를 맞아가며 어머니께 전하던 물주전자가 떠오르고, 시인이 걸었을 김포 들판의 그 곧게 난 길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곧고 곧은 그 길을 말입니다. 

마곡동 


마곡동 이름 유래는 ‘삼을 많이 심었던 골짜기’라는 뜻이 정설이지만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왜군과 싸우다 ‘지친 말이 목 놓아 울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고고마진 나루터가 있던 어촌이었고, 개발 전에는 서울 시내 전체 논 면적의 45%를 차지할 만큼 너른 논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박철 시인의 시 ‘험준한 사랑’에 나오는 마곡동 섀시집은 정곡볼링장 뒤편, 128번 종점이 있던 곳 인근입니다. 강서구 곳곳에서 박철 시인의 시를 마주하게 됩니다. 쉽게 지나쳤던 곳들이 문학 작품 속 그 공간이었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합니다. 

 "본 저작물은 '강서구청'에서 '2023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마곡지구 문화의거리, 마곡지구 모습(작성자:홍보정책과)'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강서구청, 강서아카이브(https://www.gangseo.seoul.kr/)'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네이버 블로그
밴드
floating-button-img